나의 책방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Ad astra per aspera

bigempty 2026. 6. 18. 23:31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Ad astra per aspera

책을 읽는 내내 자꾸 멈추게 되었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너무 정확하게 나를 건드려서였다.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그런 책이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새긴 라틴어 한 줄이, 오늘 여기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가장 약한 자리를 정확히 조준해 날아든다.

가난과 운명을 딛고 선 사람, 한동일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라틴어 수업』을 통해서였다.
한동일은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이른바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700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 임명된 인물이다.
그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알코올중독 아버지, 빈곤한 가정환경,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버텨낸 유학 시절.
그리고 오랜 시간 헌신하던 사제직을 내려놓는 결단까지.

이 책은 그 방황과 고민의 한복판에서 쓰였다.
흔들리는 나날을 버티게 해준 것이 바로 라틴어 문장들이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기도하듯 입에 굴리고, 새벽마다 머릿속에 새겼다고.
그 문장들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는 살고 싶어 이렇게 몸부림쳐 방황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라틴어 문장들이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 한동일, 『라틴어 인생 문장』 중에서
중세 라틴어 필사본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의 시작 부분
출처: Wikimedia Commons, 바티칸 사도도서관(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소장 중세 라틴어 필사본 (
링크
)

삶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일곱 개의 문장들

이 책은 총 7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하나의 라틴어 문장이 등대처럼 서 있고, 저자의 이야기가 그 아래에 조용히 펼쳐진다.
단순한 어록집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낸 언어들의 기록이다.

  • 운명에 지지 않고 운명을 가지는 자의 문장
  • 절망의 한복판에서 새기는 희망의 문장
  • 그래도 꿈꾸는 자가 품은 문장
  • 새벽을 깨운 문장
  •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용기와 신념의 문장
  • 타인의 말에 상처받은 이를 위한 치유의 문장
  •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최후의 문장

나를 일으킨 라틴어 문장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머문 문장들을 골라 옮긴다.

라틴어 원문 발음
Ad astra per aspera 아드 아스트라 페르 아스페라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Vexatio historia fiat 벡사티오 히스토리아 피아트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Aegroto dum anima est, spes esse dicitur 아에그로토 둠 아니마 에스트, 스페스 에세 디키투르 아파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Vita aliena est nobis magistra 비타 알리에나 에스트 노비스 마기스트라 타인의 삶은 우리에게 스승이 된다
Amor fati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 Ad astra per aspera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 걸려 있는 이 문장은, 아폴로 1호에서 산화한 우주인들을 기리기 위해 새겨진 것이다.
저자는 이 문장의 'per'에 특별히 주목한다.
'통해'가 아니라 '통과해야만'이라는 뜻이라고.
고난은 우회할 수 없다.
별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고난을 관통하는 것뿐이라는, 불편하지만 진실한 말이다.

이 한 문장을 읽고,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지름길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난 옆을 살짝 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고.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 Vexatio historia fiat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이다.
아픔이 그냥 아픔으로 끝나면, 그것은 불운이다.
그러나 아픔을 살아내고 이야기로 길어 올리면, 그것은 한 사람의 역사가 된다.
저자는 말한다. 절망에 침몰하지 말고 기필코 살아나와 이야기하라고.
아픔이 숙성되어 스토리가 되는 순간, 비로소 그것은 나를 증언하는 언어가 된다고.

"절망의 한복판에서 눈을 뜨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절망에 침몰하지 말고 기필코 살아나와 이야기해야 합니다."
— 한동일, 『라틴어 인생 문장』 중에서

읽고 나서 남은 것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슬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가슴 한켠에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한동일은 이 책에서 자신의 허물도 숨기지 않는다.
빛나는 경력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과 방황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어 문장 하나하나를 붙들며 버텨온 날들을.
그 솔직함이 책을 더 무겁고, 또 더 따뜻하게 만든다.

이 책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다.
당신에게는 삶의 고비마다 붙잡을 문장이 있는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해줄, 단 한 줄의 언어가.

나는 아직 내 문장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 문장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

교황 식스투스 4세가 플라티나를 바티칸 도서관장으로 임명하는 장면 — 멜로초 다 포를리 작 (1477)
출처: Wikimedia Commons — 멜로초 다 포를리, 〈교황 식스투스 4세와 바티칸 도서관〉(1477), 바티칸 박물관 소장. 라틴어 문헌 전통을 이어온 바티칸의 역사를 담은 프레스코화 (
링크
)
  • 제목: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부제: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 줄의 희망
  • 저자: 한동일
  • 출판사: 이야기장수
  • 출간: 2023년 10월 25일
  • 쪽수: 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