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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 림태주 산문집 『그리움의 문장들』

bigempty 2026. 6. 23. 23:51

그리움의 문장들 — 림태주 산문집 『그리움의 문장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마음 안에 그 사람을 위한 방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다. 텅 빈 자리가 아픔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가 되는 그 방. 시인 림태주는 그 방에 붙일 이름을 '그리움'이라 불렀다. 2021년 2월 출판사 행성B에서 펴낸 산문집 『그리움의 문장들』은 스스로를 '그리움 학위 소지자'라 칭하는 작가가 평생 관찰하고 연구해 온 그리움의 생태보고서다. 이 글에서는 림태주 그리움의 문장들이 담고 있는 언어와 철학을 들여다본다.

그리움의 문장들 림태주 책 표지 — 행성B 산문 시리즈 쓰는 존재 4
출처: 알라딘 (링크)

시집 없는 시인,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다

림태주는 황동규 시인의 기대를 받으며 등단했지만, 시집 한 권 내지 않은 채 산문으로 독자를 만나왔다. 짧은 글 한 편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지며 전국 각지에 팬클럽이 생겨났고, 600여 명의 팬들이 그의 문장 곁에 모여들었다. 그는 시인이자 출판사 행성B의 대표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편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산문은 눈물 없이 읽기 어렵다는 평을 받는다. 비평가 최보기는 "림태주의 문장은 무조건 믿고 읽는다"고 단언했을 만큼, 그의 글에는 세월과 감정이 응축된 신뢰가 있다.

『그리움의 문장들』은 그런 림태주가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집중해 쓴 에세이집이다. 총 244쪽, '행성B 산문 시리즈—쓰는 존재'의 네 번째 책으로, 알라딘 독자 평점 9.7점이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움'이라는 말의 뿌리를 찾아서

림태주는 언어를 벼려 감정의 핵심으로 파고드는 작가다. 그는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어원에서 출발하며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리움의 엄마는 동사 〈긁다〉이다. 나무껍질이나 동판에 긁어 새기는 것이 글과 그림이 되었고, 마음에 긁어 새기는 것이 그리움이 되었다."

'긁다'에서 '글'이 되고, '그림'이 되고, 마침내 '그리움'이 된다. 이 언어적 계보는 문학적 직관과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긁어 새기는 행위—그것이 그리움이다. 그 자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림태주 그리움의 문장들 관련 이미지
출처: 시사저널 (링크)

사랑보다 오래 참는 감정

림태주는 그리움과 사랑의 차이를 날카롭게 구분한다. 사랑이 두 사람 사이의 교환이라면, 그리움은 혼자 감당하는 감정이다.

"사랑이 교환적이라면 그리움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라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서 무해하고 무용하다. 그래서 때로 사랑보다 온유하고 오래 참고 유용하다."

그리움에는 책임이 없다. 상대방이 알아줘야 성립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속에서 혼자 피어나 혼자 타오르는 것. 그래서 의무에 의해 쉽게 지치는 사랑보다 더 오래가고, 더 조용하고, 더 오래 참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그리움의 본질을 정의하는 이 구절이다.

"그리움은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이므로 곁에 있을 때는 가장 기쁜 기쁨으로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는 심장에 동판화를 새기듯 죽을 것처럼 그리워하면 될 일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움에 종사하다 그리움에서 퇴직하는 일이라 그리움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움의 뿌리는 외로움이다

림태주는 그리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풀어낸다. 보고픔, 기다림, 외로움. 이 세 감정이 하나로 뭉쳐 그리움이 된다. 그리고 그 가장 깊은 뿌리에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움이 없는 사람은 그리움도 없다. 그리움은 외로움이 누군가의 얼굴을 향해 방향을 잡은 감정이다.

"울음이 양지에 드러낸 대낮의 외로움이라면, 침묵은 음지에 웅크린 한밤중의 외로움."

외로움에도 표정이 있다. 눈물로 쏟아지는 외로움이 있고, 말 없이 가라앉는 외로움이 있다. 림태주는 그 두 얼굴을 빛과 그늘로 나눠 담는다. 이 책은 그러한 섬세한 감정의 지형도를 244쪽의 문장으로 그려낸다.

림태주 시인 사진
출처: 독서신문 (링크)

림태주의 작품 세계

『그리움의 문장들』은 림태주 작품 중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가장 집중적으로 천착한 산문집이다. 그 이전에 『이 미친 그리움』과 『그토록 붉은 사랑』을 통해 사랑과 이별의 문장들을 벼렸고, 『관계의 물리학』에서는 "적당한 거리는 존중의 거리"라는 인식론으로 인간관계를 풀었다. 이후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에서는 언어를 화학 반응으로 비유하며 말의 무게와 가능성을 탐구했다.

림태주 주요 산문집
제목 주제 출판사
이 미친 그리움 그리움·사랑 행성B
그토록 붉은 사랑 사랑·이별 행성B
관계의 물리학 인간관계 행성B
그리움의 문장들 그리움의 생태보고서 행성B (2021)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언어와 관계 웅진지식하우스

관련 영상으로 만나는 림태주의 세계

마치며 — 그리움이 머무는 방에서

마음 안에는 누군가를 위한 방이 있다. 그 방은 그 사람이 곁을 떠난 뒤에도 문이 열려 있다. 바람이 들어오고, 냄새가 남아 있고,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돈다. 림태주는 그 방을 '그리움'이라고 부르고, 그 방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을 이 책에 담았다.

『그리움의 문장들』은 그리움을 치유하는 책이 아니다. 그리움을 제대로 겪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곁에 있을 때 기쁘게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 죽을 것처럼 그리워하면 된다는 그 말이, 어쩌면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