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 배움으로 인생을 건넌 왕멍의 철학
가끔 '배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학창 시절의 냄새가 먼저 난다.
시험지, 교과서, 점수, 등수.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왕멍은 다르게 말한다.
"나는 학생이다."
일흔이 훌쩍 넘은 중국의 대문호가, 자신을 여전히 학생이라 부른다.
처음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다.
루쉰의 뒤를 잇는 대문호, 왕멍
왕멍(王蒙, 1934~)은 중국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때 루쉰 다음으로 꼽히는 이름이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차례나 거론됐고, 2015년에는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마오둔 문학상을 역대 최고령으로 수상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열네 살, 혁명의 열기 속에 공산당 지하당원으로 뛰어들었다.
스물네 살, 우파 분자로 낙인찍혔다.
마흔두 살, 문화부 장관이 됐다.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굴곡지고 가파른 인생이었다.
16년의 유배, 그리고 배움이라는 선택
1963년, 왕멍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유배됐다.
처음에는 몇 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16년이었다.
창작은 금지됐다.
글을 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월이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 물음 앞에서 왕멍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묵직하다.
"배움을 통해 인생을 통달하고 향유했기에,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그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다른 학습이 금지되자, 그는 마오쩌둥 어록을 위구르어로 암송하는 방법으로 위구르어를 익혔다.
허락된 틈 속에서 배움을 찾아낸 것이다.
유배지의 언어를, 유배지 사람들의 문화를, 유배지의 삶을 배워나갔다.
그 과정에서 위구르 농민들이 진정한 친구가 됐고, 그 우정이 그를 지탱했다.
마흔여섯에 영어를 시작한 이유
1979년, 복권된 왕멍은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46세에 생애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알파벳 26자밖에 몰랐다.
그날부터 그는 하루에 영어 단어 30개씩을 외웠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남들이 "이제 와서 뭘"이라고 고개를 저을 나이에.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배움은 내가 아직 젊다는 것, 나도 여전히 진보할 수 있다는 것, 부단히 나를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배움은 나에게 신념을 키워주었고, 침착함을 주었으며, 열등감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다."
배움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학생이다" — 삶의 태도로서의 배움
이 책의 원제는 『我的人生哲學(나의 인생철학)』이다.
4년에 걸쳐 집필된 인생 담론서다.
하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간결하게 『나는 학생이다』로 붙여졌다.
그리고 그 제목이 책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왕멍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스스로를 학생이라 불렀다.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선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배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그를 16년의 유배에서도, 정치적 굴욕에서도, 나이듦의 쓸쓸함에서도 지켜낸 힘이었다.
- 배움은 학교 성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이루는 철학이다.
- 역경에 처했을 때가 가장 배우기 좋은 상황일 수 있다.
-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 "인생은 명랑한 항해다" — 낙관을 잃지 않는 것도 배움이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것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배움을 멈춘 순간이 노화의 시작이라면,
나는 몇 살부터 늙기 시작한 것일까.
왕멍은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에도 배움을 붙들었다.
그것이 그를 살게 했다.
화려한 문장도, 거창한 철학도 아니었다.
하루 30개의 단어.
낯선 언어로 된 한 문장.
그 작고 성실한 행위들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버티게 했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가르침보다 질문이다.
나는 지금 학생인가, 아닌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조용히 다짐하게 된다.
오늘부터 다시, 나도 학생이 되겠다고.
| 항목 | 내용 |
|---|---|
| 원제 | 我的人生哲學 (나의 인생철학) |
| 저자 | 왕멍 (王蒙, 1934~) |
| 역자 | 임국웅 |
| 출판사 | 들녘 |
| 출판일 | 2004년 10월 20일 |
| 분량 | 4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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